대만 프로야구 리그

 


'''대만의 야구 리그'''
'''구분'''
'''명칭'''
프로
중화 직업봉구
실업
대만 실업 리그
[image]
'''명칭'''
'''한글''': 중화 프로야구 리그
'''영문''': Chinese Professional Baseball League
'''한자''': 中華職業棒球大聯盟
'''종목'''
야구
'''리그 창설'''
1989년 10월 23일 (34주년)
'''국가'''
중화민국
'''리그 주관'''
중화직업봉구대연맹[1]
'''총재'''
차이치창(蔡其昌)[2](2021~)
'''최근 우승팀'''
[image] 퉁이 라이온스 (2020 시즌)
'''최다 우승팀'''
[image] 퉁이 라이온스 (10회)
'''링크'''
공식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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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1. 타이완메이저리그(TML, 臺灣大聯盟)
3. 승부조작 문제
4. 리그 수준
5. 시즌 운영
5.1. 페넌트레이스
5.2. 플레이오프
6. 인프라
6.1. 경기장 목록
7. 신인 드래프트
8. 2군 운용
9. 외국인 선수
9.1. 2021 시즌 외국인 선수
9.2. 한국인 선수
9.3. CPBL 출신 대만인 KBO 선수
10. 중계방송
11. 현재 존재하는 팀[3]
11.1. 과거에 존재했던 팀
12. 일본 프로야구 정기 교류전
13. 기타
14. 역대 우승팀
15. 팀별 우승 횟수
16.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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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만프로야구 리그. 중화직업봉구대연맹이 관리하고 있는 대만의 프로리그이다. 엄밀히 말하면 조직 이름임과 동시에 프로야구 대회 이름으로 볼 수 있을 듯.
현재 대만에서 가장 인기있는 프로 스포츠 리그다.

2. 역사




2.1. 타이완메이저리그(TML, 臺灣大聯盟)


1997년부터 2002년까지 존속했던, CPBL과는 전혀 상관없었던 별도의 리그. 심지어 양리그간 통합챔피언결정전이나 올스타전 같은 친선경기조차도 없다가 CPBL과의 경쟁에서 패해 문을 닫았다.
리그 시작부터가 막장끼가 다분했다. TVIS 방송국은 원년부터 CPBL 중계에 참여하였고, 리그 인기가 늘어나면서 대박 행진을 이어 나갔지만 1995년 중계권을 빼앗긴다. 또한 CPBL에 참여를 타진했던 SAMPO(성바오)전자[4]는 96년 이전의 현대그룹처럼 계속해서 리그 참여를 거절당했다.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졌던 양측의 주도로 아예 리그를 만들기로 한다.
성바오와 TVIS 방송국이 합자로 나루완[5]이라는 회사를 만들어 리그 사무국이 구단을 소유하고 선수를 보유한 형태로 운영되었다. 미국 프로축구인 MLS와 호주 프로야구 ABL이 같은 방식으로 운영했다. 다만 MLS나 ABL은 리그 기반이 취약함을 인식해서 리그 사무국이 구단과 선수를 보유하는 방식이었다면, TML은 이익을 특정 회사가 독점할 목적으로 구단과 선수 보유권을 독점했다.
구단을 리그가 소유하고 있으니 구단명도 CPBL과 차별을 두고자 했다. 리그 참여팀은 台北太陽(타이베이 연고), 台中金剛(타이중 연고), 嘉南勇士(자이+타이난 연고로 자이를 홈구장으로 사용), 高屏雷公(가오슝+핑둥 연고로 가오슝을 홈구장으로 사용) 4개팀이다. 리그의 태생부터가 CPBL에 대한 적대감으로 시작했던지라 CPBL 소속 선수들의 계약을 파기하고 빼오는 형태로 리그의 세를 키워나갔다. 마침 1997시즌 CPBL에서 승부조작이 터지면서 TML의 인기도 상승하였다.
미디어그룹이 운영하는 리그답게 로고 사용권이나 명명권을 마구 팔아제끼면서 현재 KBO의 히어로즈처럼 팀명을 계속 바꿀 수 있게 했다. 타이중 진강의 경우 台中金剛(1997)-台中中纖金剛(1998)-台中金剛(1999)-台中媚登峰金剛(2000-2001)-台中宏碁金剛(2002)로 거의 매해마다 팀명을 바꿨다. 한국어 위키피디아에 기록된 구단명 변천 과정 참고. 사실 초반에는 스폰서가 잘 붙지 않아서 리그 주관사인 TVIS 방송국이 3년간 자난 루카(嘉南勇士)의 스폰서로 참여했다. 또 다른 주축이었던 성바오는 4년간 타이베이 타이양(台北太陽)의 스폰서로 참여하다가 리그에서 떨어져 나갔다. 이후 타이베이 타이양을 스폰서 한 팀은 후에 청타이 코브라스를 창단하는 청타이은행이었다.
선수들의 계약 또한 개별팀이 아닌 리그 사무국에 묶여 있었고 전력 균형을 이유로 리그내에서 자유롭게 팀을 이적하지 못했다. 6시즌 동안 3개팀이 우승을 맛보았고, 우승하지 못한 가오핑도 준우승만 3번한 팀이었다. 팀명도 자주 바뀌고 명문구단도 없이 고만고만한 팀들만 모인 리그의 인기가 좋을리가 없었다.
이 당시 인구 2300만의 대만 프로야구팀은 무려 11개나 되어 과당경쟁 형태가 됐고, 인기나 수익 측면에서 밀린 TML 측이 먼저 손을 들었다. 사실 평균관중수는 TML이 많았지만 그래봐야 경기당 3,000명 수준, 97년 블랙이글스스캔들로 넉다운된 CPBL의 관중이 1/4로 급감해버린 경기당 1,500명 수준의 리그와 비교는 의미는 없어보인다.
4개팀은 나루완 타이양과 제일은행 진강의 팀으로 합병하여 CPBL에 2003시즌부터 참여하게 되었다. 이 후 양팀은 마코토 코브라스라뉴 베어스로 명백을 이어가다 마코토를 인수한 디미디어는 인수 1년 만에 해체를 하면서 라미고 몽키스만이 TML의 흔적을 겨우 겨우 보존하고 있다.

3. 승부조작 문제


승부조작 문제가 심각하다. 2000년대에는 1~2년에 한번 꼴로 대형 승부조작 문제가 터져서 리그가 존폐 위기에 몰리기도 했다.
대만은 인구가 약 2,370만으로 대한민국의 절반도 안되는 데다가, 경제개발 과정에서 대기업보다는 부품을 공급하는 중소기업을 집중 육성했기 때문에 대한민국, 일본과는 다르게 자국 브랜드의 소비재 대기업이 적다. 그나마 포모사폭스콘 같은 몇 안되는 대기업들도 스포츠단 운영에 참여하지 않고 있다. 실업축구나 농구도 경제 규모에 비해 리그 참가팀이 적다. 대기업이 홍보목적으로 스포츠팀을 운영하는 한국과는 근본적으로 다른데 언급한대로 대만의 대기업들은 B2B 생산재 기업(TSMC 등)이여서 개인상대 브랜드홍보를 할 필요가 없던가, 소비재 기업이라도 외국브랜드로 사업하는 경우[6]가 많아서이다.
중견기업이 CPBL의 주요 스폰서라 연봉은 KBO의 1/3 정도 규모 밖에 안 된다. 선수들 유니폼에는 포뮬러 1처럼 스폰서가 덕지덕지 붙어있는건 기본이고, 슝디 엘리펀츠가 중신 그룹에 매각되기 전까지 메인 스폰서는 타이베이에 있는 슝디'''호텔'''이었다. 한희민의 증언에 따르면 '''원룸'''에서 숙소 생활을 했다고 한다. 2010년 기준으로는 CPBL에서 연봉이 한화 1억 원 이상인 선수가 판웨이룬(퉁이), 천진펑(라뉴) 2명 밖에 안 되었다. 참고로 같은 해 KBO에서 억대 연봉을 받는 선수는 무려 '''100명'''. 2019년에는 많이 나아져서 연봉 4억 정도를 받는 린즈성을 필두로 왕설웨이, 왕이쩡 등이 연봉 1억 이상의 FA 다년계약을 맺었고, 푸방 가디언즈 한 팀만 봐도 후친룽, 린이취안, 린저쉬안, 가오궈후이, 장젠밍, 린쿤성, 장즈셴 등이 한국 돈으로 억대 연봉을 받고 있지만 CPBL 선수노조 자료에 의하면 2018년 리그 전체 평균 연봉은 61,200달러(당시 환율로 6,800만 원 수준)로, 이 해 KBO의 평균 연봉 1억 5026만 원에 비하면 절반이 채 되지 않는다. 또한 최저연봉 (월 7만 대만 달러로 연봉으로 환산하면 3천만원 정도)은 그렇게 차이가 나지 않지만 스타 플레이어로 갈 수록 격차가 크다.[7] 이 탓에 선수들이 승부 조작의 유혹에 쉽게 빠져들 수밖에 없다고 분석되기도 한다.
2019년 대만 리그에서 잠깐 뛴 헨리 소사는 대만 리그에서 받던 돈은 한국 리그의 1/4 수준이었고 숙소도 한국 모텔급이라고 한국에 뛰다가 대만에서 뛰자니 너무나도 인프라가 차이가 났다고 인터뷰하기도 했다.
여기에 대만 사회에 깊게 개입하고 있는 삼합회의 존재는 문제 해결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 무엇보다 1997년에 터졌던 검은 독수리 사건으로 제명된 선수들이 삼합회에 입회한 뒤 브로커(숙주)가 되어, 이전의 동료 선수들을 다시 끌어들이는 악순환의 연속이다.[8] 이런 이유로 선수들이 묵는 호텔에 경호원들이 상주하여 외출을 통제한다. 또한 2007년에는 국민당의 거물급 정치인인 우젠바오가 뇌물 수수혐의로 수사를 받던도중 승부조작과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포착해 이를 조사한 이후 구속했다.
조작 논란에서 자유롭고 타 국가 프로야구팀에서 뛰는 천웨이인[9]이나 왕젠민[10], 궈홍치[11]과 같은 선수들이 있어 전력에는 전혀 문제가 없는 국가대표야구의 인기는 도리어 상승했다. 당연한지는 몰라도 대만의 야구 그 자체로써의 인기는 상당히 높기 때문에 MLBNPB의 인기도 상당히 높은 편이다. 하지만 2008 올림픽에서 중국에게 패배한 뒤에 국가 차원에서 승부조작 의혹이 나타난걸 보면 국가대표 야구도 승부조작의 안전지대는 아닌 듯하다. 안에서 깨진 바가지가 밖에서 안 깨질리가 없다고, 해외리그의 몇몇 선수 제외하면 다들 국내리그에서 승부조작에 노출되어 있었던 선수들이니... 대만에서 열린 2013 아시아 시리즈에서는 호주의 캔버라 캐벌리 팀이 조작 세력으로부터 '''매수 시도'''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승부조작이 만연하다 보니 대기업들도 이미지가 실추될까봐 리그 참여를 꺼리는 편. 대만의 승부조작 세력은 전직 프로선수나 전직 야구 프런트가 주도했고 이 사람들을 '''화교 네트워크를 통한 범지구적 범죄조직들인 삼합회''' 조직들이 몽땅 흡수해버렸기 때문에, 대만의 행정력으로도 다 잡는게 어렵다시피하다.
다행히도 리그 평균 관중수도 늘고 있고 대기업이라고는 20대 기업에 속하는 원년 참가팀 퉁이그룹만 있었지만 지금은 대기업들도 속속 참여하고 있다. 2014년 10대 그룹에 드는 중신금융지주의 참여(슝디호텔이 모기업이었던 엘리펀츠를 인수)[12], 2017년에는 대만 5대 그룹에 드는 푸방금융지주가 리그에 참여(가오슝 기반 중견그룹 e-united가 모기업이었던 라이노스 인수)하여 이제는 대기업들이 참여하는 리그가 되었다. 2020년 현재는 금융 대기업이 리그에 진입하고 라미고는 아예 일본의 큰손[13] 라쿠텐에 넘어가서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다.
다만 신규팀 창단에는 여전히 애를 먹고 있는데 2013년부터 메이푸 자이언츠, 총위에 팔콘스 등이 제5구단으로 물망에 올랐으나, 중소기업들이 참여가 가능했던 과거와 달리 리그의 사이즈가 커져서 이제 중소기업들의 참여가 어려워지고 있다. 심지어 2018년에는 호주리그 선수들을 데려다가 5구단을 창단한다는 구상도 나왔는데 역시나 흐지부지 되면서[14] 5구단 창단은 앞으로 어려운 것이 아닌가하는 예측이 많았었는데...
2019년 웨이취안 드래곤스가 재창단을 선언하였다. 2020년 2군 진입하였으며 2021년 1군 진입 예정이다.[15] 웨이취안 또한 과거에는 중소기업으로 구단 경영에 큰 어려움을 겪다 해체된 경험이 있으나, 현재는 웨이취안을 인수한 모기업인 딩신이 중국 식품시장 1위를 차지하고 있을 정도의 큰 기업으로 앞으로는 CPBL도 대기업 위주로 돌아갈 전망.

4. 리그 수준


CPBL의 리그 수준은 높은 편이 아니다. 1994년 당시 한국 프로야구 선수 출신으로는 최초로 CPBL에 진출한 한희민에 따르면 '''초창기 한국프로야구보다 좀 더 아래.'''[16] 시스템 자체도 엉망이었고 타 팀에 대한 정보 수집 및 전략 분석의 개념이란 것이 없었다고 한다. 그 덕분인지 모르지만 용병들 중 선수생활의 마지막 불꽃을 지피기 위해 대만 리그로 진출하는 선수[17]들도 상당수 많다.
현재 대만 야구의 수준은 아주 단적으로 말해서 AA 급에서 밀려난 투수가 1~3선발이 되는 리그이다. 예를 들어 1군에서 뛰어본 적이 없던 KT 창단멤버[18] 마이크 로리, KBO에서 3선발 수준의 투수였던 지크 스프루일, 배팅볼러 수준으로 중간에 퇴출당한 닉 에디튼 등이 정상급 투수가 되었고, 삼성에서 후반기 데드암 징후를 보이며 재계약에 실패한 알프레도 피가로 등이 CPBL에 스카우트되어 뛰기도 했다. 최근에도 고령으로 더이상 팀을 찾기 어려운 앤디 밴 헤켄 역시 2018년 CPBL에 진출했고 2019년에는 헨리 소사가 대만으로 향했다. 이외의 다른 외국인 투수들 역시 A~AAA 레벨에서 더 이상 팀을 찾지 못하고 애틀랜틱 독립 리그와 같은 A~AA 수준의 독립 리그에서 괜찮은 활약을 한 후, 선수 생활의 마지막 돈벌이로 택하게 되는 리그가 되어버렸다. 또한 반대로 대만에서 잘 한 외국인 선수, 자국인 선수[19]가 KBO나 NPB에 갔을 때 성공적인 선수가 일부 있기는 했지만 대체로는 처참하게 실패하는 경우가 많다. 마치 KBO를 폭격하고 MLB나 NPB에 도전한 선수들 중 성공한 선수는 일부에 불과한 것과 같다.
대만 태생의 선수 중에서도 한 때 마이너리그에서 뛰었고, 메이저리그를 한 번쯤 밟았던 선수들이 나이를 먹어서 돌아오면 리그 최고 수준 선수가 된다. 다저스 메이저를 밟았던 후친렁, 궈홍츠, 대만 계투로 가장 이름을 날린 전직 메이저리거 니푸더 등이 아직도 주요 타자나 마무리 투수 등으로 활약하고 있다.
메이저리그 전문가들의 평에 의하면 싱글A 수준이라고 하는 듯. 위에서 언급한 사례들을 참고해볼때 비교적 설득력 있는 주장이다. KBO 리그/리그 레벨차 논쟁에 약간이나마 더 자세한 내용이 있으니 참고.

4.1. 아시아 시리즈


그런데 아시아 시리즈에서는 '''이상하게''' 한국과의 전적이 좋다. 2006년 아시아 시리즈에서는 삼성 라이온즈가 라뉴 베어스에 패하고[20], 2008년 아시아 시리즈에서에서는 퉁이 라이언스가 SK 와이번스정대현을 10-4로 이기는 바람에 야갤에선 우주최강 퉁이 라이온즈라고 칭송받았다.
거기에 2010년 대만/한국 챔피언쉽에서는 슝디 엘리펀츠가 다시 SK와 송은범을 끝내기 안타로 패배시켰다. 하지만 이틀동안 '''슝디 마운드에는 대만 투수는 한명도 올라오지 않았다.''' SK 선수들이 대만팀하고 상대를 한건지 대만타자들로 구성된 중남미 팀하고 겨룬건지 구분이 되지 않았을 정도. 그 덕분에 대만에서는 이를 두고 '''한국에 진출하고 싶어서 잘 치고 잘 던진다'''란 말까지 나오고 있다.[21] 당장 위에 예시로 설명해놓은 케니 레이번의 경우만 하더라도 그 경우였기 때문에 이런 말이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리고 위의 송은범이 끝내기 안타를 맞고 진 날 슝디 엘리펀츠의 선발 투수였던 올랜도 로만은 결국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에 입단하여 일본에 진출하는데 성공하였다. 그래도 타자들이 끈질기게 투수를 잘 공략하고 시프트를 잘 짜놓았던 것을 보면 이번 경기만큼은 그래도 전력분석이란 걸 한 것 같았는데, 아니나 다를까 CPBL에서 SK 와이번스의 데이터를 슝디 엘리펀츠에게 건네줬었다고 한다(…).
이후 한국에서 열린 2012 아시아 시리즈에서도 라미고 몽키스가 이전년도 아시아 시리즈 우승팀인 삼성 라이온즈를 3:0으로 완봉패시켰다. 그런데 6년전 이 대회에서 패배를 안겨준 옛 라뉴 베어스가 바로 이 라미고 몽키스이다. 이때 마이크 로리 선수의 완투가 주목받기도 했다. 참고로 로리는 2011년 넥센 히어로즈에서 입단 테스트를 받았으나 낙방된 선수였지만 2014년 kt wiz의 외국인 선수로 입단하게 된다.
하지만 대만 클럽 전체로 보면 아시아 시리즈에서 콩라인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삼성 라이온즈가 5대회만인 2011년에 한국 클럽으로서는 최초로, 동시에 비(非) 일본 클럽으로서도 최초로 우승을 차지하는 영광을 안으면서 대만 클럽들에게도 '우리도 할 수 있다'는 기대감을 안겨 주었으나, 이듬해 삼성을 꺾고 결승에 올라온 라미고가 일본 대표로 나선 요미우리 자이언츠한테 3:6으로 패배하며 또 다시 우승 실패, 2년 만에 또 자국에서 열린 2013년 대회에서 EDA 라이노스(구 싱농 불스)는 2전 전패로 조별예선에서 광탈하였고 퉁이 세븐일레븐 라이온즈가 조 2위로 준결승에 오른 뒤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를 꺾고 결승에 올라 전날 삼성을 연장 끝에 꺾고 올라온 캔버라 캐벌리(호주)를 만나며 대만 클럽의 사상 첫 우승에 대한 기대감을 한껏 높였으나, 캔버라의 돌풍은 결승에서도 거세게 불어닥쳤다. 4:3으로 이기고 있다가 7회와 8회에 거하게 털리며 4:14로 대패하면서 또 준우승에 그치고 말았다. 이로써 대만 클럽은 아시아 시리즈에서 우승 없이 준우승만 벌써 4번째.
이 와중에 대만의 승부조작 세력이 캔버라 선수들에게 접촉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다행히 승부조작 제의를 받은 선수들이 조작을 하지 않고 대만 경찰 측에 신고하면서 진상이 밝혀졌다.관련기사

5. 시즌 운영



5.1. 페넌트레이스


연도
진행 방식
1990년
~1992년
전, 후기로 시즌을 나눠[22] 전후기 각각 원년 리그 참가팀 4구단[23]이 팀간 15시합을 치러 모두 45시합, 전후기 총합 90시합을 치름.
1993년
~1994년
리그 참가팀이 6구단으로 늘어나면서[24] 전, 후기 각각 팀간 9시합을 치러 모두 45시합, 전후기 총합 90시합을 치름.
1995년
~1996년
전, 후기 각각 팀간 10시합을 치러 모두 50시합, 전후기 총합 100시합을 치름.
1997년
리그 참가팀이 7구단으로 늘어나면서[25] 전, 후기 각각 팀간 8시합을 치러 모두 48시합, 전후기 총합 96시합을 치름.
1998년
전후기리그 제도에서 단일리그 제도로 규정이 변경되었으며, 스바오 이글스작년의 승부조작 사건으로 1년간의 리그 참가정지 처분을 받아 리그 참가팀이 6구단으로 줄어들면서[26] 팀간 21시합을 치러 총합 105시합을 치름.
1999년
상술했듯이 스바오 이글스가 1998년 9월 해산하면서 리그 참가팀이 정식으로 6구단이 되었으며, 팀간 20시합을 치러 총합 100시합을 치름.
2000년
~2002년
다시 전후기 리그 체제로 규정이 변경되었으며, 리그 참가팀이 4구단으로 줄어들면서[27] 전, 후기 각각 팀간 15시합을 치러 모두 45시합, 전후기 총합 90시합을 치름.
2003년
~2008년
리그 참가팀이 6구단으로 늘어나면서[28] 전, 후기 각각 팀간 10시합을 치러 모두 50시합, 전후기 총합 100시합을 치름.
2009년
~2020년
리그 참가팀이 4구단으로 줄어들면서[29] 전, 후기 각각 팀간 20시합을 치러 모두 60시합, 전후기 총합 120시합을 치름.
2021년
~현재
리그 참가팀이 5구단으로 늘어나면서[30] 전, 후기 각각 팀간 15시합을 치러 모두 60시합, 전후기 총합 120시합을 치름.
2009-2020 시즌까지는 팀별로 주중 2경기, 주말 3경기를 치렀다. 주중 경기는 화, 수, 목 중 이틀 경기를 편성하고 주말 경기는 금, 토, 일 3연전을 편성하였다. 2021년부터는 5개팀 체제가 되면서 1경기, 2연전, 3연전이 대폭 혼재되어 있으며 경기를 펼치는 일자가 뒤죽박죽이다.[31] 때문에 팀간 이동거리가 상당히 늘어나게 되었다. 소수의 월요일 경기도 편성된다.
우천 연기가 많아 전기리그는 6월 중순에 연기된 경기를 편성하고 후기리그는 10월에 연기된 경기를 편성한다.
과거에는 일본프로야구처럼 잡다한 출장 경기가 많아서 본거지에서는 불과 30~40경기만 치루고 나머지 홈경기를 순회를 하면서 진행했다. 심지어 남의 본거지에 홈경기를 편성하는 경우도 심심지 않게 있었다. 실제 타이난 연고의 퉁이 라이온즈의 경우 2017년까지도 타이베이나 타이중에서 홈경기를 열었다. 하지만, 마케팅 문화가 조금씩 자리잡으면서 홈구장에서의 경기가 거의 대부분으로 바뀌는 추세로 2018 시즌 이후로는 순회 경기가 거의 사라졌다. 현재는 오지에 가까운 동부지역에 편성하는 화롄 경기(연간 3경기 정도로 축소)와 접근성 문제로 비어있는 대형경기장인 가오슝 경기만 간간히 편성되고 있다.

5.2. 플레이오프


1998년
~1999년
시즌이 전/후기로 나뉘지 않고 단일시즌으로 치러진 유일한 시기이며, 시즌 승률 2, 3위 팀이 2선승제의 플레이오프를 치러 플레이오프 우승팀이 시즌 승률 1위 팀과 타이완 시리즈에서 격돌해 최종승자를 겨룬다.
2005년
~2008년
전/후기 우승팀이 다를 경우, 전/후기 우승팀 중 시즌 승률이 낮은 팀과 전/후기 우승팀 이외의 팀들 중에서 시즌 승률이 가장 높은 팀(와일드카드 획득팀)이 3선승제의 플레이오프를 치러 플레이오프 우승팀이 전/후기 우승팀 중 승률이 높은 팀과 타이완 시리즈에서 격돌해 최종승자를 겨루며, 전/후기 전부 같은 팀이 우승했을 경우엔 시즌 승률 2, 3위 팀이 3선승제의 플레이오프를 치러 플레이오프 우승팀이 전/후기 우승팀과 타이완 시리즈에서 격돌해 최종승자를 겨룸.
2009년
~현재
전/후기 우승팀이 다를 경우, 그 중 한 팀이 시즌 승률 1위일 경우엔 전/후기 우승팀이 타이완 시리즈에 출장해 최종승자를 겨루며, 어느 팀도 시즌 승률 1위가 아닐 경우[32]엔 전/후기 우승팀 중 시즌 승률이 낮은 팀과 시즌 승률 1위 팀이 3선승제의 플레이오프를 치러 플레이오프 우승팀이 전/후기 우승팀 중 승률이 높은 팀과 타이완 시리즈에서 격돌해 최종승자를 겨룸. 전/후기 전부 같은 팀이 우승했을 경우, 시즌 승률 2, 3위 팀이 3선승제의 플레이오프를 치러 플레이오프 우승팀이 전/후기 우승팀과 타이완 시리즈에서 격돌해 최종승자를 겨룸. 이때 전/후기 우승팀에겐 타이완 시리즈에서 1승 어드밴티지를 준다.
역대 플레이오프 개최 결과는 다음과 같다. 승패 현황의 기호는 우승팀을 기준으로 한다. 참고로 아직까지 플레이오프에서 무승부가 나온 적은 없다.
연도
우승팀
패전팀
전적
승패 현황
1998
웨이취안 드래곤스
퉁이 라이온즈
2 - 1
XOO
1999
웨이취안 드래곤스
퉁이 라이온즈
2 - 1
XOO
2005
청타이 코브라스
퉁이 라이온즈
3 - 1
OXOO
2006
퉁이 라이온즈
싱농 불스
3 - 0
OOO
2007
퉁이 라이온즈
청타이 코브라스
3 - 0
OOO
2008
슝디 엘리펀츠
라뉴 베어스
3 - 0
OOO
2017
중신 브라더스
퉁이 라이온즈
3 - 1
OXOO
2018
퉁이 라이온즈
푸방 가디언즈
3 - 1
OXOO

5.3. 타이완 시리즈



타이완 시리즈는 전/후기 우승팀끼리 맞붙을 시에는 7판 4선승제이고 한 팀이 싹슬이해서 플레이오프를 치를 시에는 싹쓸이한 팀에게 1승을 부전승으로 준다.[33] 즉 라미고가 전기/후기 리그를 다 우승한 2017 시즌같은 경우는 6판 4선승제. 구장의 경우는 전/후기 우승팀 끼리 맞붙을 시에는 승률이 높은 팀이 1/2/6/7차전 홈구장 자격을 갖는다. 한 팀이 싹쓸이 한 경우는 그 팀이 1/2/5/6차전에서 홈 경기 개최권을 가지며 플레이오프 승리팀은 3/4차전 홈 경기 개최권을 갖는다. 홈경기 개최권을 가졌다고 홈구장에서 경기하는건 아닌데 항목 참고.

6. 인프라


2000년대까지 국내에는 대만 야구장 인프라에 대한 긍정적인 시선이 많았다. 하지만 실상 2000년 이전까지만 해도 20,000석 이상은 커녕 프로구단 홈구장 좌석 수는 15,000석 이하였다. 타이베이 시내에 있는 정규 야구장은 딸랑 하나에 그나마 14,000석의 타이베이시립야구장이 전부였다. 이 야구장도 2000년에 사라지면서 타이베이 시내에는 야구장이 전무한 상태가 됐다. 타이베이시 홈팀 경기는 타이베이현(현.신베이시)에 있는 7,200석 규모의 신좡야구장[34]과 원래 아마추어 용도의 6,000석으로 계획된 톈무 야구장[35]에서 분산 개최되었는데, 톈무는 목동 야구장처럼 주변이 주거지라 주말에만 경기가 열리는 등 프로야구에 쓸만한 구장이 태부족이다.
한때는 한국 언론에서 대만의 야구장 인프라를 집중 찬양했던 시기가 있었는데 2014년 광주-기아 챔피언스 필드 개장 전까지였다. 대만이 1997년부터 2010년까지 연달아 5개의 야구장을 신축하는 동안, 한국은 안전성마저 의심되는 노후화된 야구장을 프로야구 메인 홈구장으로 삼았다. 국제정세상 올림픽월드컵 등 국제대회를 유치할 수 없었던 대만은 아시아야구연맹 본부를 유치하고 각종 국제 야구대회를 개최했다. 이러한 흐름 속에 1999년 가오슝, 2006년 타이중, 2010년 타오위안에 20,000석 규모의 야구장을 개장했다. 대만에서는 약 5년 간격으로 신규 야구장을 개장하는 동안 한국은 약 15년 간격으로 신규 야구장을 개장하다 보니[36] 당시 대만의 잇따른 야구장 신축을 부러운 시선으로 봐야만 했다.
하지만, 이 시절 만들어진 5개 야구장(1997년 신좡야구장, 2005년 더우류 야구장 포함)의 특징은 국제대회를 위해 만들다 보니 모든 구장이 중앙은 400ft, 좌우는 330ft로 동일한 쿠키커터 야구장이다. 국제 경기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대전구장보다 못한 편의시설, 잠실 야구장 수준의 좌석 간격과 배치를 보여 프로야구 홈 구장에는 최적화가 되어있지 않다.[37] 관중석도 20,000석 넘는 구장이 없어 큰 경기시에는 표를 구하기 쉽지 않은 단점도 있다. 2014년 이후로는 한국도 새로운 야구장들을 다수 개장하면서 한국 언론들은 더 이상 대만 야구장의 인프라를 띄우지 않는 편이다.
2018년부터 KBO 리그에서 뛰는 왕웨이중 덕분에 KBO 리그에 관심이 큰 대만 야구 팬들이 KBO 리그 경기를 인터넷으로 시청하면서 쓴 글에서는 "경기장 시설이나 이렇게 고화질로 중계하는 한국에 견주면 우리 대만 야구리그가 참 인프라가 개판이라는 걸 알겠다"고 한탄했다. 미국이나 일본이야 넘사벽이지만, 한국을 이렇게 보니 한국조차도 넘사벽이라고 할 지경. 더 웃긴 건 그 좋다는 야구장이 2018년 기준으로 가장 낙후된 야구장 중 하나였고 그 시즌을 끝으로 1군이 사용하지 않는 마산 야구장.
물론 순수 야구장 인프라 자체는 대만이 단연코 우월하다. 초등학교도 야구장을 갖춘 곳이 있을 정도다. 하지만 12,000석 이상의 야구장은 6개로 한국보다 열악하다. 심지어 매해 정규리그 경기가 열리는 화롄야구장은 5500석의 관중석 만을 갖추고 있다.

6.1. 경기장 목록




7. 신인 드래프트


KBO 리그와 비슷한 시기에 드래프트를 한다. 해외 계약 예정자 등은 제외하고, 일본처럼 신청자에 한해서 드래프트를 하는 것으로 보인다.[38][39]
어느 해에는 14명을 지명하는 경우도 있고, 어느 해에는 겨우 6명밖에 지명 안하는 해도 있다. 팀 마다 지명자 수도 다르며, 획일적이지 않다. 특정 라운드에서 팀이 지명 종료를 자체적으로 선언할 수 있다. 단적으로 2018 드래프트에서는 4개 팀이 각각 10, 8, 7, 7 라운드까지 지명하였다. 물론 비정상적으로 낮은 라운드의 선수들은 이전의 KBO처럼 뎁스용 지명이 대부분이지만 중신 브라더스의 왕웨이첸(王威晨)같은 예외도 있다.[40]
순서는 한국처럼 성적 역순으로 지명하며, 1차 지명부터 바로 성적 역순으로 순차적으로 지명한다. 지역구 내에서 자유계약 형식으로 1차지명을 하는 한국이나 중복지명이 가능해서 중복지명 시 추첨으로 결정하는 일본 프로야구와의 차이. 그래서 만약 대어가 들어오면[41] 1픽을 가진 구단에게는 좋은 일이 된다. 해외파 출신이라고 해서 따로 페널티는 없는데, 예를 들어 2018년에는 바로 며칠 전 마이너리그에서 퇴단한 C.C.Lee(리첸창)이 드래프트장에서 2라운드에 지명을 받기도 했다.
KBO와는 다르게 2013년부터야 고졸이 드래프트에 나올 수 있게 됐고[42] 드래프트 참가자들을 보면 3/4정도는 여전히 대졸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고졸 출신의 유망주들이 바로 프로에 진입하고 있으며, 이 선수들이 최근 CPBL의 주축으로 자리잡고 있어 향후 경향은 바뀔 것으로 예상된다.
자국 리그의 규모가 프로리그지만 작은 편이고, 승부조작 등으로 자국 야구리그보다 해외 야구나 국가대표 야구가 더 인기많은 대만 특성상 지명을 거부하고 해외로 나가는 선수가 꽤 많다. 대표적인 케이스가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에서 뛰는 쑹자하오. 원래 2015년 드래프트에서 퉁이 라이온즈의 2차 2라운드 지명을 받았지만 지명을 거부하고 육성선수로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에 진출했다. 그리고 2017년 정식선수로 승격하는데 성공하면서 1군을 밟았다.[43] 다만 최근 들어 양질의 대만 선수들의 진로가 다변화되고, 이에 맞춰 타이완 구단들의 계약금 역시 소폭 상승하여, 역시 경향은 바뀔 수 있다.
또다른 특징으로는 9월에 한 학년이 시작하는 대만 특성상 9월부터는 드래프트된 선수가 바로 1군 경기에 출전할 수 있다는 것이다.
2017년 드래프트에서는 쌍둥이 선수가 같은 팀[44]에 지명되어 화제가 되었다. 이중 한 선수는 1차 1라운드, 즉 전체 1순위로 뽑혔다. 바로 陳重羽라는 포수. 참고로 쌍둥이 동생인 내야수 陳重廷도 바로 다음 턴인 2라운드에 지명되었다. 2020년 현재 형 陳重羽은 입단 2년차 때 주전포수를 꿰차는 등 1군 레귤러로 활약하고 있으나 동생 陳重廷는 1군과 2군을 오가고 있으며 2군조차도 폭격하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학창시절 학업성적도 형이 더 좋았다고 하니 동생은 그저 안습.

8. 2군 운용


다소 특이한 방식의 2군 리그 운용을 하고 있다.
2006년 6개팀 중 라뉴 베어스와 퉁이 라이온스의 2개 팀 2군과 실업팀들이 2군 리그에 참여하면서 2군 리그가 시작됐다. 유일하게 전용 연습구장을 가지고 있던 슝디 엘리펀츠도 2008년에서야 2군 참여를 시작하였고, 2009년부터는 아마추어팀 참여 없이 2군 리그가 진행되었다. 전국을 순회하며 다녔던 1군 처럼 홈구장에 정착하지는 못한채로 경기를 가졌다.
그러다 2014년부터 전 팀 모두 타이완 남부 지역에 모여 훈련하는 것을 골자로 2군 리그 전 경기를 남부지방에서 치르고 있다. 핑둥현에 있는 핑둥야구장과 중신공익파크(중신브라더스 모기업 소유)에서 주로 경기를 치르고 가오슝과 타이난에 일부 경기를 배치하다가, 2019시즌부터는 핑둥야구장이 빠지고 남부 지방의 특정 구장과 특정 구단을 매치하는 방식으로 변경하였다.[45] 2015시즌 이후 리그 전체로 보면 2군 경기는 매주 6경기, 즉 하루에 딱 1경기만 열리는 셈. 즉, 각 팀은 일주일에 3경기씩만 치르며 구단별로 시즌 72경기를 치른다.
2군의 출범은 많이 늦었고 구단들 또한 구단 전용 연습장을 아직 마련하지 못하고 있지만[46] 대만 2군 연합팀, NPB 2군 연합팀, KBO 2군 연합팀 등이 경기를 치르는 아시아 윈터 베이스볼 리그를 의욕적으로 주도하는 등 2군에 대한 투자를 늘려가는 중이다. 다만 호주리그 선수들로 구성된 팀을 추가한다는 계획도 있었으나 이는 실현되지 못했다.

9. 외국인 선수


외국인 선수 쿼터가 NPB와 비슷하다. 2군에는 무제한 보유가 가능하며, 1군에는 그중 3명만 올릴 수 있다. 그러나 용병을 많이 영입하여 2군에도 외국인 선수가 상당수 있는 NPB[47]와는 달리 CPBL에서는 외인을 3~4명만 영입하고 그 3명을 계속 1군에서 돌리는 방식의 운영을 하는 경우가 많다.[48] 이 이유는 대만프로야구의 규정 때문이다. 대만프로야구는 외국인 선수를 1군에 올릴 때 등록 절차를 거친다. 이렇게 등록 절차를 거친 선수는 한 시즌에 두 번까지 2군에 내릴 수 있다.[49] 그리고 구단이 1군에 처음 등록한 3명의 선수 중 마음에 들지 않는 선수가 생겨서 대체 용병을 1군에 올리고자 할때는 3명 중 한 명을 '등록 취소' 해야 하는데 대만프로야구 규정상 외국인 선수의 1군 등록 취소는 방출밖에 없다고 한다. 따라서 대만프로야구는 외국인 선수가 맘에 안 들면 2군 보유량이 무제한임에도 불구하고 바로 방출하고 대체용병을 영입하는 것. 그래서 외국인 선수를 많아봤자 4명만 영입하는 것. 단 2020년부터는 용병 등록 절차를 한번에 4명까지 할 수 있기 때문에 4번째 용병을 1군에 올리는 것은 기존의 선수를 방출하지 않고 그냥 2군에 내려버리고 4번째 용병을 1군에 올리면 된다. 물론 5번째 용병을 데려와서 1군에 올리려면 또 한 명을 방출해야 하지만 말이다.
또한, 투수 몰빵 영입이 가능하기 때문에 2019년의 에릭 우드 - 로저 버나디나 영입 (대체선수 관계) 을 제외하고는 모든 구단이 '''선발 투수''' 만으로 외국인 쿼터를 운영하기 때문에 투수 랭킹 1~10위 안에는 1~2명을 제외하고는 항상 외국인들이 자리하고 있다.
리그 수준 차이 때문인지[50], NPB와 KBO는 대부분 최소 메이저리그 데뷔 경험이 있는 선수를 주로 뽑는 경향이 큰데, CPBL은 주로 붙박이 마이너리거나 독립 리그, 멕시칸 리그 선수를 많이 뽑는다.[51] 심지어는 AAA조차도 못 밟은 선수를 데려오기도 한다. 예를 들어 중신 브라더스에서 2017년에 뛴 릭 티슬리는 '''A+도 못 밟았다.''' 메이저리그 경험이 있는 선수들도 있기는 하나, 그런 선수들은 대개 NPB나 KBO에서 실패해서 미국에 가도 다시 메이저에 갈 가능성이 없는 선수들. 근데 올스타급 메이저리거가 와서 뛰었던 적도 있다. 2013시즌에 매니 라미레즈가 3개월간 뛰었다. 퇴출된 건 아니고 계약이 딱 3개월. 재계약 제의를 받았지만 본인이 거부했다.
그래서 선수들 연봉도 일반적으로 15만 달러 안팎에서 형성된다. 예를 들어 2019년 리즈, 소사 등 미국과 한국에서 적절한 실적을 거두었던 선수라도 월봉 2-3천만원대, 즉 연봉 20만 달러 이내라고 한다.[52] 60~70만 달러는 기본으로 받고 그 이하를 받는 용병이 오면 한숨 쉬는 KBO와, 즉전감 용병들은 못해도 100만 달러는 받는 NPB와 비교하면 액수가 매우 초라하다. [53] 또한 다른 리그와 다르게 월 단위로 계약을 갱신하기 때문에 잘 하던 외국인 선수가 갑자기 시즌 중 다른 나라 리그로 가버리기도 한다. 2015년 세든, 2017년 애디튼, 2019년 소사의 경우가 이런 경우. 다만 2020년 현재는 년 단위로 계약을 하는 선수들도 있다. 특히 특급 대우로 큰 돈을 주고 데려온 아리엘 미란다, 헨리 소사 같은 케이스. 이유는 당연히 시즌 중 타 리그 이적 방지.
2020시즌에는 전반적으로 외인 가격이 올라갔다. 2020년 기준 에이스급인 선수들은 25~30만 달러는 그래도 받는 듯. 2020년 기준 헨리 소사, 에스밀 로저스는 40만 달러 가까이 받으며, 중신 브라더스아리엘 미란다[54]는 아예 60만 달러라는 역대급 계약으로 대만에 들어왔다. 한국으로 치면 새로 입단한 선수에게 300만 달러를 안겨주는 수준의 현질. 참고로 그 매니 라미레즈도 대만에서 뛸 때 월봉 6만 달러였다. 7~8개월 정도 월봉을 주는 걸 감안하면 미란다보다 월봉이 낮다(...)
KBO 리그에서 뛰었던 경험이 있는 외국인 선수가 뛰는 경우가 종종 있다. 대부분의 경우 리그의 수준차이 때문에 좋은 성적을 기록한다.[55] 2019년에는 로리, 애디튼, 소사, 리즈, 지크 등 5명이나 되는 KBO 경험자가 뛰게 된다. 리그 전체 용병의 거의 절반이 한국 경험자인 셈이다.
반대로 외국인 선수들이 KBO에서 성공해서 NPB로 가거나 NPB에서 망해서 KBO로 가는 것처럼 대만에서 성공한 선수가 KBO나 NPB로 가거나[56] KBO나 NPB에서 실패한 선수가 대만에 오기도 한다. 2018 시즌 기준 KBO 출신의 지크 스프루일, 마이크 로리, 닉 애디튼, 앤디 밴 헤켄이 대만에서 뛰고 있다. 2017년에도 크리스 세든, 알프레도 피가로, 스캇 맥그레거, 코리 리오단, 스캇 리치몬드 등의 KBO 출신 선수들이 뛰었다. 2018년에도 마이크 로리, 지크 스프루일, 앤디 밴 헤켄이 뛰었으며 NPB 출신은 아니지만 일본인 투수 치넨 코야도 뛰었다. 특히 KBO에서 어중간한 성적을 내서[57] 퇴출당한 선수는 상당한 주목을 받는다. 물론 NPB에서 실패한 선수가 몸값 때문에 KBO에 못 가는 것 처럼[58] 에릭 해커더스틴 니퍼트처럼 이미 KBO에서 상당한 커리어를 남겼기에 몸값이 비싸져 대만에 못 가는 경우도 있다.
2019년 텍사스 메이저리그에서 뛰었던 비벤스-덕스가 대만리그로 이적하였고, KBO에서 헨리 소사가 이적하는 등 외인선수의 수준은 올라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9.1. 2021 시즌 외국인 선수


2021 시즌 개막일 기준 각 팀의 외국인 선수는 다음과 같다.
(시즌 개막 전에 계약한 선수는 굵게 표기했으며, 시즌 도중에 방출 혹은 웨이버 공시된 선수는 취소선으로 표기한다.)
1. '''라이언 볼링거 (등록명 : 包林傑)''' (선발투수, 신규영입)
2. '''애런 윌커슨 (등록명 : 威克森)''' (선발투수, 신규영입)
3. '''딜런 오버튼''' (선발투수, 신규영입)
4. '''덱 맥과이어''' (선발투수, 신규영입) : 2019년 삼성 라이온즈에서 뛰어 노히트노런을 달성한 우완투수
5. '''브래딘 하겐스''' (선발투수, 신규영입) : 2017년에는 오릭스 버팔로즈에서 뛰었다.
1. '''미치 라이블리 (등록명 : 萊福力)''' (선발투수, 재계약) : 어느덧 대만프로야구에서만 4년차 시즌을 맞이한 베테랑 우완 투수. 2015년 후반기에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에서 뛰었고 그 이후 멕시코와 마이너리그를 떠돌다 중신에 입단했다. 작년에 3.94 6승 1패를 기록했으나 7월 10일 어깨 염증으로 아쉽게 시즌을 마쳤다.
2. '''호세 데 폴라 (등록명 : 德保拉)''' (선발투수, 재계약) : 메이저리그에 단 1경기 등판한 좌완투수로, 일본 독립리그인 베이스볼 챌린지 리그에서 뛰다 중신에 입단했다. 작년 초반에는 퇴출 1순위였으나 중후반때 3.20 16승 8패를 기록하여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한다.
3. '''오넬키 가르시아''' (선발투수, 신규영입) : 2018~20년 한신 타이거즈에서 뛰었던 쿠바 출신 좌완투수
4. '''가브리엘 이노아''' (선발투수, 신규 영입) : 2019~20년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에서 뛰었던 도미니카 출신 우완투수
5. '''에스밀 로저스 (등록명 : 羅傑斯)''' (선발투수, 재계약)
  • 푸방 가디언즈[59]
1. '''헨리 소사 (등록명 : 索沙)''' (선발투수, 재계약)
2. '''마이크 로리 (등록명 : 羅力)''' (선발투수, 재계약) : 대만에서 9번째 시즌을 맞이한 CPBL의 니퍼트라 할 수 있는 선수. 원래는 라쿠텐 몽키스[60]에서 2년간 뛰었고, kt wiz에서 실패한 경력도 있다. 나이가 적지 않음에도 여전히 에이스의 역할을 잘해주는 선수.
3. '''매니 바누엘로스 (등록명 : 邦威)''' (선발투수, 재계약)
4. '''JC 라미레즈''' (선발투수, 신규영입)
5. '''요마르 콘셉시온''' (선발투수, 신규영입)
  • 퉁이 라이온스[61]
1. '''브록 다익손 (등록명 : 布雷克)''' (선발투수, 재계약)
2. '''팀 멜빌 (등록명 : 猛威爾)''' (선발투수, 재계약)
3. '''테디 스탠키위츠 (등록명 : 泰迪)''' (선발투수, 재계약)
4. '''펠릭스 듀브론트''' (선발투수, 신규영입) : 2018년 롯데 자이언츠에서 뛰었던 베네수엘라 출신 좌완투수
1. '''제이크 브리검''' (선발투수, 신규영입)
2. '''드류 가뇽''' (선발투수, 신규영입)
3. '''타자와 준이치''' (선발투수, 신규영입)
4. '''로셀 에레라''' (내야수, 신규영입)
5. '''브라이언 우달 (등록명 : 伍鐸)''' (선발투수, 신규영입) : CPBL에서 7번째 시즌을 맞이한 우완투수. 작년 푸방 가디언즈에서 6.55 2승 9패라는 영 좋지 않은 성적을 기록하고 방출 했지만 웨이취안이 그를 받아줬다.

9.2. 한국인 선수


대만프로야구에 진출해서 뛴 한국 선수들은 한희민, 김대우, 김용운 등 총 16명이다. 관련 글을 참조. 다만 좋은 활약을 보여준 선수는 그리 많지 않은데 한국에서도 경쟁에서 밀려난 2군 선수들이 대만에 진출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2017 시즌 이후에 김광수와 김경언이 대만프로야구 진출을 시도했으나 김경언은 타자인 데다가 임팩트있는 활약을 한국에서 한 적이 없다는 이유로 끝내 입단 테스트에서 탈락했고 김광수는 입단이 합의되었으나 계약 직전에 본인이 대만에서 뛰고 싶지 않다고 포기하고 은퇴했다.

9.3. CPBL 출신 대만인 KBO 선수


'''2020시즌 현재까지는 없다.''' 판웨이룬의 사례에서 보듯이 CPBL 출신의 자유계약선수를 데려오려면 원적 구단에 이적료와 보상비를 지급해야 한다. 배보다 배꼽이 커서 데려올 수가 없다. NPB에서 뛰는 대만 선수들은 많은데라는 의문을 갖겠지만, 대부분은 양다이강처럼 일본 고교 졸업자이거나 형인 양야오쉰처럼 프로 입단부터 NPB에서 한 케이스들이다. 그리고 우수한 선수들은 이미 입도선매식으로 고교나 대학 졸업 후 일본 구단에서 데려가기 때문에 CPBL에서 우수한 성적을 올린 선수에 별로 관심이 없다.[62] 따라서 CPBL 출신 NPB 선수도 손에 꼽을 정도다. 서비스 타임의 반도 채우지 않고 일본으로 건너간 왕보룽이 매우 특이한 사례에 해당된다.[63]
왕웨이중은 CPBL이 아닌, 미국에서 뛰다가 NC 다이노스에 온 거라서 판웨이룬과는 케이스가 다르다.
2010 광저우 아시안 게임이 끝나고 나서, 아시안 게임 선발 투수 판웨이룬, 그리고 야수 펑정민린즈성에 우완투수 양젠푸 4명이 내년 시즌 기회가 된다면 한국프로야구에서 뛰고 싶어한다는 게 보도되었는데 이를 두고 상관없던 태권도 관련 혐한을 한 주제에 천안함을 거론하며 응원하던 대륙간컵때의 그것과 맞물려 혐대만 감정이 나와 한국 2군이나 뛰라는 부정적인 반응이 팽배하다. 실력으로 놓고 본다면 충분히 국내에서도 통할 듯 보이지만, 이미 그거하곤 별개로 국제적인 문제 때문에 부정적인 인식부터 통하는게 현실.
그 중 판웨이룬은 SK 와이번스에서 영입 의사를 보였다. # 그런데 판웨이룬을 영입하기 위해서는 대만프로야구 규정에 따라 올 시즌 해당 선수 연봉의 2.5배를 구단에 이적료로 지불하고, 1.5배 이상을 선수에게 보상해 줘야 했다. 즉, 최소 4배 이상이다. 따라서 지난해 연봉이 약 2억 3,000만 원이었던 판웨이룬을 데려오려면 최소한 9억 2,000만 원이 든다. 결국 SK 구단은 판웨이룬 영입을 전면 포기했다. CPBL의 규정이 바뀌기 전까지는 대만 선수들의 한국 진출은 요원할 것으로 보인다. 뭐 돈만 낸다면야 상관없겠지만, 저 돈이라면 북중미의 꽤 수준급 선수를 영입할 수 있으니까...
CPBL 소속 선수로 KBO에 진출한 대만인 선수는 없고 대신 두 명의 유명한 대만 출신 선수가 한국에서 뛴 적은 있다. 한 명은 왕웨이중이고 한 명은 쉬성밍(서생명). 쉬성밍(徐生明) 전 EDA 라이노스 감독은 당시 속해있던 웨이취안 야구단[64]과 자매 관계에 있던 한국화장품 실업야구단에 입단하여 5시즌(1984~1988) 동안 활약한 바 있다.[65]

10. 중계방송


과거에는 외국에 중계권을 판매하지 못했음에도 지역락을 걸어 한국에서 경기를 시청할 수 있는 방법이 거의 없었으나, 신종코로나바이러스 사태 이후 세계 최초로 정규리그를 시작하면서 영어 중계방송까지 실시하고 있다. 다만 외국에서 인터넷으로 시청하는 경우에는 화질이나 전송속도가 떨어지며, 자막은 대만 현지 중계방송 자막을 그대로 쓰기 때문에 중국어를 모르면 시청에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

중신 홈경기
퉁이 홈경기
라쿠텐 홈경기
푸방 홈경기
중국어
야후스포츠


야후스포츠
영어
ELTA스포츠 트위터
일레븐스포츠 트위터
일레븐스포츠 트위터
야후스포츠
2013년까지는 리그에서 중계권을 일괄 계약하였으나 중계권 파동 이후 현재는 구단에서 자체적으로 중계권을 계약하고 있다. 리그 자체적으로도 CPBL.TV를 운영하고 있지만 인터넷 무료 중계가 많아 구독자는 거의 없다. 대만에서는 LINE TODAY를 통해 무료 중계를 시청할 수 있다.

11. 현재 존재하는 팀[66]




11.1. 과거에 존재했던 팀




12. 일본 프로야구 정기 교류전


2012년2013년 동일본대지진 복구 지원 자선 대회를 시작으로 매해 정기적으로 대회를 펼치고 있다. 양 리그간 프로대표팀의 친선 경기임에도 불구하고 국가 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출전하는 것이 특징. 대만은 CPBL과 국가대표팀 유니폼을 혼용하여 입고 출전한다.
2012년 3월
도쿄돔
CPBL(1패) - NPB(1승)
2013년 11월
타이베이 톈무, 신좡
일본(2승1패) - 중화타이베이(1승2패)
2016년 3월
나고야돔, 오사카돔
CPBL[67](2패) - 일본(2승)
2017년 3월
후쿠오카 돔
CPBL(1승1패) - 일본(1승1패)
2018년 11월
후쿠오카 돔
중화타이베이(1승) - 일본(1패)

13. 기타


  • 식민지 시대 대만의 야구는 물론 ‘야큐’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하지만 1949년 이후 대만의 야구는‘봉구’(방추)가 된다. 국공내전에서 패한 국민당 정부는 이해 이른바 ‘국부천대’로 근거지를 대만으로 옮긴다. 장제스와 국민당은 항일과 반공을 정체성으로 했다. 국민당은 ‘중국화’ 정책으로 일제 잔재를 일소하려 했다. 그 과정에서 야구 용어도 대폭 ‘탈일본화’됐다. 중국 본토에서 야구를 봉구라고 했으니 그 영향도 있었지만, 그래서 지금 대만의 프로야구 기구 이름은 중화직업봉구연맹(CPBL)이다.
  • 모든 팀의 연고지가 대만 서부 지역에 위치하고 있다. 다시 말해 이란(宜蘭), 화롄현(花蓮), 타이둥(臺東) 현에는 팀이 없다는 소리. 이 동네는 인구가 다 합쳐도 100만이 안 된다.
  • 2015년 정규리그 240경기 관중 합계 1,327,250명, 평균관중은 경기당 5,530명. 작년 대비 8.37% 증가하였다. 2017시즌에는 총관중 1,318,275명으로 리그 평균관중 5,493명이었다. 구단별로는 라미고 7,596명, 중신 5,559명, 퉁이 4,493명, 푸방 4,321명.
  • 2016 시즌을 보면 규정이닝을 채운 투수 중 ERA 3점대 투수가 1명, ERA 4점대 투수가 3명이었다 ERA 5.28의 브루스 빌링스가 평자 탑 5에 들어갈 정도. 그로 인하여 4할 타자도 둘이나 있다. 왕보룽[68](0.414)과 장즈셴(0.402). 2018년 시즌은 홈런왕이 홈런 23개밖에 못 친 데다 20홈런을 넘긴 선수가 겨우 한 명에 그칠 정도로 타고투저는 많이 완화되었다. 왕보룽장즈셴이 대만프로야구 창립 이래 최초의 4할 타자이다. 왕보룽이 2년 연속 4할을 치면서 대만프로야구의 4할 타자는 딱 4번 나왔다.
  • 2000년대 들어서 현대 유니콘스가 모기업의 문제로 경영난을 겪게 되자 한때는 CPBL의 운영방식이 현대 유니콘스의 대안으로 잠시 주목받은 적이 있었다. 중소기업이 중심이 되어 스폰서를 적극적으로 유치하고 구단 운영비를 절약하며 수익을 내는 모델이 위기를 타개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으리라 보았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대만 모델을 한국에 적용하려는 움직임이 있기도 전에 승부조작 사건이 터지는 바람에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대만 리그의 승부조작 문제는 야구 팀 운영구조의 문제와도 연관이 있었기 때문에 이 문제점이 파악되자마자 깨끗하게 잊혀졌다. 모기업이 약한 슝디 엘리펀츠의 경우 타기업 광고가 대부분이었지만 퉁이 라이온스나 싱농 불스의 경우 계열사나 자사 브랜드 광고패치를 붙여서 스폰서라고 하기도 어려웠다. 지금은 대기업이 돈 크게 싸들고 참여해서 그런지 CPBL 유니폼이 훨씬 더 깔끔한 편이다. 디자인은 ... 점점 나아지는 것같긴 하다.
  • 각 팀들의 치어리더들이 경기 중간 공연을 할 때, 한국의 대중가요를 많이 사용하고 있다.#1, #2, #3 2015년 올스타전이 열릴 당시에는 한국에서도 인기를 끌었던 EXID의 '위아래' 로 공연을 펼쳤고##, 최근에는 타이난 출신인 쯔위의 영향으로 트와이스의 노래들도 사용되고 있다.## 하지만 시내에서도 라디오에서도 한국 노래는 간간이 들을 수 있으니 야구장만 특별한게 아니다.
  • 2018년 공식적인 미국과의 포스팅 논의가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최근 3년차에 포스팅 권한을 얻도록 리그 규약이 개정된 이후 첫 포스팅 권리 획득자인 왕보룽과 천윈원이 나왔는데, 왕보룽의 경우 일본 구단과 포스팅[69] 을 진행하였지만 첸의 경우 소수의 미국 팀에서 관심을 보인 바 있으나 MLB와 협약된 포스팅 제도 자체가 없어 포스팅이 무산된 바 있다.
  • 2018년 이후 5-6구단 창설에 좀더 진지한 수준의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다. 과거에는 떡밥 수준에 그쳤지만[70] 차이잉원 총통이 직접 나서 임기 중 반드시 5, 6구단을 만들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일단 2019년 웨이취안 드래곤스가 재창단이 되었고 정부 전체가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지만 창단엔 걸림돌이 많다. 일단 연고지역 기업이 움직여야 하고, 여의치 않을 땐 시민구단 창단을 고려해야 한다. 신규 창단이 지지부진하다 보니 2017년 집권여당 민주진보당 소속 우빙루이(吳秉叡) 입법위원(국회의원에 해당)이 대만 팀 개수를 2개로 줄이고 일본프로야구(NPB)에 가입시키자는 주장까지 내놓아 논란이 되었다.# 민진당은 본래 타이완 독립운동에서 유래한 정당이고[71] 타이완 독립운동 지지자들이 일본에 우호적인 경우가 많긴 하나, 이 주장은 대만 야구팬들의 자존심을 박박 긁었다. 당연히 최대 야당인 국민당에서 이 발언을 비판했다.
  • 2020년 코로나 사태로 미국 메이저리그를 비롯한 미국, 일본, 한국의 프로야구 리그가 전부 개막이 연기된 데 반해 코로나 청정국(확진자 500명 이하)인 대만에서는 예정대로 2020년 4월 11일 프로야구 리그를 개막하기로 했다.# 5월 9일에는 시즌 개막 후 처음으로 관중 입장을 허용했다. # 향후 대만 프로야구 위상이 더 높아질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 예상대로 야구에 굶주린 팬들이 이거라도 보자며 몰려들어, 일본이나 미국 등 해외를 비롯해 한국에서도 해야갤 등 게시판에서 대만프로야구 움짤을 돌려보거나 대만프로야구 이야기가 나오는 등 어느 정도 주목을 받고 있다. 다만 KBO보다도 낮은 시합수준 때문에 평소 MLB에 익숙해져 있던 팬 대부분은 "못한다 못한다 말만 들었지 이렇게 못할줄은" 정도의 반응이라 거의 웃음벨 취급. 아직 갈 길이 요원하다. 이후 KBO가 개막하고 미국 ESPN에서 KBO에 관심을 보이면서 현지 중계까지 확정이 되자 그렇게까지 큰 관심을 받지 못한 대만측에서는 대만이 먼저 프로야구를 개막했는데 왜 한국 야구에 관심을 보이냐는 반응을 보였다(...).[72]
  • 대만의 리그이지만 리그 이름은 정식 국호인 "중화민국"을 따라 중화 프로야구 리그(中華職業棒球大聯盟)이다. 이 때문에 대만 독립운동을 주장하는 사람들 중 일부는 리그 이름을 대만 프로야구 리그로 고쳐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코로나 사태가 터져 대만 프로야구 리그가 외국에 중계되었을 때 이런 주장이 다시 주목받기도 했지만 지금은 일단 잠잠해졌다.
  • 한국의 스포츠토토에서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발매 대상경기가 없어지면서 무기한 중단사태에 이르렀고 이 때문에 한때 대만 프로야구를 넣기로 결정했으나, 승부조작으로 폭망했던 리그를 넣자는건 말이 안된다는 반발 여론과 함께 K-리그가 개막을 확정하면서 결국 발매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 엄청난 타고투저로 공인구 반발계수가 무려 0.571 이상이다. 문제는 그전까지도 0.560 이라는 상상을 초월하는 탱탱볼 이었던것. KBO가 평균 0.4250 수준의 공인구를 썼어도 엄청난 타고투저가 발생했는데 대만은 아예 앞자리부터 다른 수준. 타고투저로 리그가 정상적이지 않자 반발계수를 다시 이전 수준으로 돌린다고 했지만 KBO팬들이 보기엔 거기서 거기인 수준이다. 다만 대만이 대체로 극 타고투저인 것은 맞지만 KBO와 다르게 공인구를 엄청 자주 바꾸다 보니 시즌별로 타고, 투고가 확확 갈린다. 최근 몇 년 중 최악의 타고투저 시즌은 보통 2016년, 그 다음으론 2017년이 꼽히며 그 반대로 2018[73], 2014[74] , 2013[75] 시즌의 경우는 살짝 투고타저 시즌이었다.[76] 최근 기록을 보면 2009년에는 타고투저, 2010~2014에는 투고타저, 2015~2017에는 다시 타고투저, 2018에는 다시 투고타저, 2019~2020에는 다시 타고투저로 보는 것이 맞다. 그래서 베테랑들 성적을 보면 홈런 갯수의 기복이 심한 선수가 종종 있는데, 이렇게 공인구가 자주 바뀌는 것도 한몫한다.

14. 역대 우승팀


  • 라뉴 베어스=라미고 몽키스
  • 슝디 엘리펀츠=중신 브라더스
  • 싱농 불스=EDA 라이노스=푸방 가디언즈
'''연도'''
'''우승'''
1990
웨이취안 드래곤스
1991
퉁이 라이온즈
1992
슝디 엘리펀츠
1993
1994
1995
퉁이 라이온즈
1996
1997
웨이취안 드래곤스
1998
1999
2000
퉁이 라이온즈
2001
슝디 엘리펀츠
2002
2003
2004
싱농 불스
2005
2006
라뉴 베어스
2007
퉁이 라이온즈
2008
2009
2010
슝디 엘리펀츠
2011
퉁이 라이온즈
2012
라미고 몽키스
2013
퉁이 라이온즈
2014
라미고 몽키스
2015
2016
EDA 라이노스
2017
라미고 몽키스
2018
2019


15. 팀별 우승 횟수


2018시즌까지이며, 해체한 구단은 취소선 처리
'''팀'''
'''우승'''
'''준우승'''
퉁이 라이온스
9
6
중신 브라더스
7
6
라미고 몽키스
6
2
웨이취안 드래곤스
4
2
푸방 가디언즈
3
5

0
2

0
1

0
1

0
1

16. 관련 문서



[1] 中華職業棒球大聯盟.[2] 대만 입법원 부원장으로 재직중인 인물로 2021년 1월 17일부로 대만프로야구연맹의 커미셔너로 재임하게 되었다.[3] 한국과 비슷하게 대부분 구단명에 지역명이 없다.[4] 聲寶股份有限公司(성보고분유한공사). 1962년 설립된 가전제품 회사로 일본의 샤프와 기술제휴를 맺었다.[5] 대만 원주민 중 한 부족의 이름이기도 함.[6] 이 경우는 브랜드 소유 본사가 국제적 일관성을 이유로 홍보대행[7] 해당 시즌 양 리그의 최고 연봉은 KBO가 이대호의 25억 원, CPBL이 린즈성의 5억 원대 (연 1440만 대만달러) 로 5배 정도 차이가 났다. KBO의 고질적인 사이닝 보너스 뭉터기는 제외.[8] 프로선수가 될 가능성이 있는 선수는 고등학생 시절부터 삼합회가 스폰서를 선다는 이야기가 있다. 게다가 이미 승부조작으로 퇴출된 선배들이 앞장을 서는 형편이니...[9] 한신 타이거스 소속[10]뉴욕 양키스 소속[11]LA 다저스 소속, 궈홍즈라고 불리기도 한다.[12] 중신금융지주는 이미 중신 훼일스를 운영한 바 있고, 리그 철수시에도 승부조작으로 해체한 게 아니라 많은 미련을 가지고 있었다.[13] 그냥 대기업이 아니라, 일본에서 이미 프로야구 구단을 운영하는 데다 일본 축구판에서 돈지랄을 이끌고 있다.[14] 2019년 2군리그에 참가시킨다는 구상이었으나 그마저도 시행되지 못했을 정도로 현실성이 떨어지는 안이었다.[15] 대만리그 규정상 신규 창단 팀으로 취급되며 이 경우 2019년 드래프트에는 참여하더라도 2군에서 1년을 보내야 하며, 또한 상당 규모의 재정을 확보하고 1900만 달러 수준의 참가비를 내야 한다.[16] KBO가 1982년에 출범했으니 당시의 시점으로 15~20년 정도 뒤쳐친 셈이다. 더구나 그 격차도 갈수록 커진다. 정작 한희민은 2년 동안 꼴랑 6승 16패를 기록했다. 하락세였어도 너무 초라한 전적이다. 대만 야구가 공인구 반발력이 한국보다 압도적으로 높아서 타고투저이긴 하지만...[17] 앞에서 설명한 한희민같은 케이스가 있지만 대개는 다카쓰 신고틸슨 브리또, 미키 캘러웨이와 같이 국내에서 방출된 용병들도 진출하는 케이스가 많은데, 이 용병들은 마지막 한국에서 뛰었던 성적과 비교해보면 거의 회춘 수준으로 기록이 상승해버린다. 자세한건 다카쓰 신고틸슨 브리또 항목 참조. 매니 라미레즈도 선수 생활 말기에 일본프로야구에서조차도 입단을 거부당할 정도로 실력이 떨어지자 대만프로야구로 진출해서 3개월 정도 뛰었는데 이미 다 퇴물이 된 데다가 나이도 40대로 늙었음에도 불구하고 OPS 9할 7푼대로 대만을 폭격했다.[18] 사실 마이크 로리는 한국에서 뛰었던 시즌에 팀이 1군이 없었고 2군만 있었기 때문에 그랬던 것.[19] 다만 대만은 해외 프로야구에 갈 경우 해외로 직행하는 것이 압도적이고, 심지어 고교야구부터 유학가는 선수들도 많다 보니 CPBL에서 상위 리그로 진출한 대만인은 왕보롱이 유일하다. [20] 이때의 활약으로 라뉴 베어스의 좌완 에이스 우스요우는 치바 롯데 마린즈에 진출했으며 우스요우가 팀에 안겨준 이적료로 팀이 적자를 메꿨다고 할 정도로(...) 이적료도 엄청 받았다. 그러나 2년 동안 2경기 2선발 0승 0패 ERA 2.25로 뛴 경기에서는 좋았지만 부상 등으로 거의 뛰지를 못했으며, 2년 만에 방출당해 대만으로 돌아오자마자 승부조작에 가담하는 바람에 흑역사가 되고 영구제명당했다(...)[21] 한국에서 뛰는용병들이 일본으로 진출하면 버는 돈이 적게는 1.5배에서 많게는 2~3배까지 올라가는데, 대만 용병들도 한국으로 진출하면 2~3배로 버는 돈이 뻥튀기된다. 2017년 초에 대만에서 뛰다가 대체 외인으로 롯데 자이언츠에 입단한 닉 애디튼의 경우, 중신 브라더스에서 그에게 1년간 주기로 한 돈은 2년차에 고작 12만 달러였다. 심지어 롯데에서 준 돈은 3배가 넘는 50만 달러. 계약파기로 인한 위약금을 지불한 뒤에도 대만에서 뛰는 것보다 두 배는 버는 것이다. 또 유니 라이온스의 에이스 브루스 빌링스는 2016 시즌때 팀 에이스임에도 불구하고 18만 달러밖에 못 받았다. KBO 리그의 팀 에이스들이 150~200만 달러를 받는 것과 비교하면 차이가 매우 심하다. 물론 빌링스의 경우는 첫 해라서 적게 받은 것도 있지만 말이다.[22] 이후 단일시즌 제도로 치른 1998~1999년도 시즌을 제외하고 이 전후기 리그 제도를 계속 유지한다.[23] 싼상 타이거스, 웨이취안 드래곤스, 퉁이 라이온즈, 슝디 엘리펀츠[24] 스바오 이글스, 쥔궈 베어스가 새로 참가.[25] 허신 웨일스가 새로 참가.[26] 스바오 이글스는 결국 이해 9월 해산을 선언하여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1998년 시즌을 징계로 날렸으니 사실상 1997년 시즌이 스바오 이글스의 마지막 시즌이었다.[27] 웨이취안 드래곤스싼상 타이거스가 1999년 시즌 종료 후 해산.[28] 경쟁 리그였던 대만대연맹(TML)이 2002년 시즌 종료 후 폐지되면서, 이 과정에서 당시 TML에 참가했던 4구단이 2구단씩 서로 합병하는 방식으로 2개의 신구단을 창단해 대만 프로야구 리그에 참가하기로 결정. 이때 창단된 청타이 코브라스, 라뉴 베어스가 새로 참가.[29] 디미디어 티렉스중신 웨일스가 2008년 시즌 종료 후 해산.[30] 웨이취안 드래곤스 재창단.[31] 2021시즌 5월 둘째주 웨이취안의 일정은 타오위안(화)-휴식(수)-타이난(목)-타이베이(금~일)의 형태가 된다.[32] 즉, 승률 1위 팀이 전/후기 어느 쪽도 우승하지 못했을 경우.[33] 일본프로야구의 클라이맥스 시리즈 파이널 스테이지 규정과 같다.[34] 이후 12,500석으로 증축하였으며 WBC와 프리미어 12에서도 사용되었다.[35] 현재는 10,000석 규모의 구장으로 프리미어 12에서 한국팀이 경기를 가진 타이베이 시내에 위치한 구장이다. 야구장 옆에 위치한 타이베이시립체육대학이 관리중이다. 여담으로 2002년 5월 일본프로야구 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오릭스 블루웨이브가 정규시즌 2연전 경기를 이곳에서 벌이기도 했다.[36] 1985년 사직 야구장, 2002년 문학 야구장, 2014년 광주-기아 챔피언스 필드.[37] 간단한 예를 들어 신좡 야구장의 경우 개장 이후로 줄곧 홈구단이 있었지만 푸방 가디언스가 홈구장을 위탁경영하면서 컵홀더가 있는 관중석으로 교체하였다. 가오슝 청칭후는 구장만 크지 컵홀더도 없다.[38] 참고로 한국은 고교, 대학 졸업 예정자는 외국 프로 팀과 계약하지 않는 이상 전원 자동 지명 대상이다.[39] 廖椿儒라는 투수는 2013년부터 2018년까지 다섯 번이나 드래프트를 신청했는데 다 미지명되는 굴욕을 겪었다(...)[40] 2015년 드래프트 13라운드로 중신 브라더스에 지명되었다. 전체 45순위이자 전체에서 두번째로 뒷순위. 그럼에도 불구하고 데뷔하고 5년 만에 도루왕을 두번이나 따냈다.[41] 해외유출이 심한 대만 특성상 전직 마이너리거나 일본리거가 드래프트에 나오는 일은 매년 다반사로 있고, 메이저리거 출신도 종종 나온다.[42] 그 전에는 고졸은 군필자만 가능했다. 즉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군대를 갔다가 제대해야 대학 안 가고 드래프트에 나올 수 있었던 것. 근데 이제 대만은 모병제니까 뭐...[43] 2015년 드래프트 기준 3명이 지명을 거부했는데, 이 중 한 명은 계약금 협상 결렬로 입단을 포기한 케이스였고 실업야구에서 커리어를 마쳤다. 나머지 한 명은 중신 브라더스의 11라운드 지명을 받은 고졸 투수였는데 너무 하위픽이라 그랬는지 대학 진학을 택한 케이스. 이 선수는 대학을 졸업하고 퉁이 라이온즈에 3라운드로 지명되면서 프로에 진출했다.[44] 퉁이 라이온즈.[45] 중신은 모기업 소유의 핑둥 중신공익파크, 퉁이는 타이난 1군 경기장, 푸방은 이전 연고지인 가오슝, 라쿠텐은 자이현립구장, 웨이취안은 더우류구장에서 경기를 소화하고 있다. 이게 홈구장 개념은 아닌게 위에 짝 지어진 구단들이 원정팀 자격으로도 경기를 치르고 있다. 하지만, 각 구장에서 치러지는 경기에 반드시 해당 팀들의 경기를 편성하고 있다.[46] 2010년대 후반 한국의 관점에서 봤을 때는 구단 전용 연습구장이 어떻게 없을 수 있나 싶겠지만 한국도 프로 출범 25년이 되는 시점까지도 구단 전용 연습구장을 갖춘 구단이 두산, 삼성, LG, 현대로 절반에 불과했다. 상동 야구장이 생긴게 불과 2007년의 일이다. 다만 한국은 리그 초반부터 구단 전용 연습구장을 만든 선도적인 구단들이 있었다.[47] 이들은 대부분 육성선수나 보험용 계약이다. 물론 시즌 중후반의 경우는 고액용병이 워낙 못해서 시즌 후 퇴출이 확정된 상황에서 돈이 아까우니 2군 뎁스용으로 2군 경기에 출전시키는 경우도 있지만 말이다.[48] 또한, 일본과 다르게 외국인 선수를 2군에 내린 후에 시즌이 끝날 때까지 기다려주지 않고 그냥 방출해버린다. 외국인 선수가 2군에 있는 경우는 대부분 퇴출 예정 용병이 아직 쫓겨나지 않아서 1군에 올라갈 수가 없어서 퇴출 시기까지 대기를 하는 경우거나 이런 경우를 예상하고 땜빵용으로 아주 낮은 수준의 선수 한명을 추가로 두는 정도이다.[49] 그러나 두 번 2군에 내린 선수는 그 시즌이 끝나기 전까지는 1군에 못 올라온다.[50] CPBL의 수준은 보통 싱글 A 취급받는다고 한다.[51] 일반적으로 대만프로야구에서는 트리플 A, KBO, NPB, 그리고 독립 리그인 애틀랜틱 리그 출신의 선수를 선호하며 멕시칸 리그 선수는 후순위라고 한다.[52] 헨리 소사는 월봉 3만 달러로 연봉 20만 달러는 넘긴다. 이게 리그 특급 대우라고 한다. 단, 포스트시즌 경기에 출장할 시 추가 수당이 나오며 인센티브도 조금 더 붙어있다고 한다. 단적으로 2017년 마이크 로리는 총액 26만 달러의 계약을 했는데 이때 4~5만 달러 정도는 옵션이었다.[53] 허나 AAA에서조차도 붙박이가 못 되고 AA를 왔다갔다하는 선수들이 주로 가는 CPBL 특성상 그 정도 받아도 감지덕지다. 애초에 AAA에서 풀 시즌으로 있어도 잘 해야 10만 달러 정도인데 CPBL에 오는 선수는 AAAA리거만 돼도 상급 용병 대우를 받는다는 것을 생각하면... 실제로 용병 명단을 보면 메이저리그에서 1경기라도 뛴 선수가 절반도 안 된다. 메이저리그 경험만 있어도 일단 상급의 커리어인 셈.[54] 메이저리그에서 풀시즌 선발도 해본 쿠바산 좌완투수로 2018년 시즌 도중 소프트뱅크에 입단해 ERA 1점대를 기록하며 후반기 1선발이었으나 분석당하기 시작한 2019년에는 제대로 먹튀행각을 벌이고 방출당했다. 이후 80만 달러 계약으로 두산 베어스에 입단하면서 한국행.[55] 대표적으로 마이크 로리. KBO에서는 kt wiz 2군에서만 뛰고 방출당했으나 대만에서는 15년, 16년 시즌 2년 연속으로 평균자책점 1위와 다승왕을 기록하였고, 탈삼진도 15년 시즌에 1위, 16년 시즌에 2위를 기록했다. 특히 16년 시즌에서는 대만야구의 타고투저가 끝판왕에 달해 ERA 4점대 이상인 선발 투수가 겨우 4명이었는데, ERA 3점대를 찍은 투수는 그가 유일했다. 그야말로 대만판 더스틴 니퍼트.[56] 가장 최근 케이스로는 2020년에 중신 브라더스에서 뛴 아리엘 미란다가 2021 시즌을 앞두고 두산 베어스와 계약을 맺은 것.[57] 지크 스프루일같이 완전히 못 써 먹을 수준은 아니지만 용병으로써는 기준 이하인 선수들.[58] 특히 2019 시즌부터 KBO에서 몸값 100만 달러 제한을 걸면서 더욱... 당장에 닛폰햄에서 실패한 오스왈드 아르시아 같은 선수는 100만 달러 제한만 없었어도 KBO에서 영입 시도를 했을 거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59] 가장 KBO 리그 출신을 많이 데리고 오는 팀. 4팀 중 가장 꾸준히 한국을 주시하고 있다.[60] 당시 라미고 몽키스[61] 가장 외국인 선수 선발에 공을 들이는 팀. 메이저리그 출신을 가장 꾸준히 영입한다.[62] 외국인 선수 보유가 무제한인 것과는 무관하게 전술하듯 타 국적이더라도 일본에서 학교를 다닌 뒤 드래프트에 참여할 경우 국내 선수로 인정이 되기 때문이다. 물론 일본에서 학교를 나오지 않았어도 CPBL을 거치기 전에 일본에서 저렇게 데려가기도 하지만 말이다.[63] CPBL의 FA제도는 KBO와 유사하나 해외 진출의 경우는 3년의 서비스타임을 채우면 구단의 동의하에 시도할 수 있다.[64] 대만의 식품회사 실업야구단이자 웨이취안 드래곤스의 전신[65] 1986년 시즌부터 뛴 것으로 된 자료도 많은데 1984년 시즌에 뛴 것이 몇 몇 자료에서 확인된다.[66] 한국과 비슷하게 대부분 구단명에 지역명이 없다.[67] 이 해에는 CHINESE TAIPEI 유니폼에 중화민국 국기를 붙이고 출전하여 대만 내에서 말이 많았다. 중화 타이베이 참고[68] 1993년생 라미고 몽키스 소속 선수로, 대만 최고의 호타준족 슈퍼루키 외야수. 16시즌에 4할 1푼을 넘긴 타율에다 29홈런-24도루로 데뷔 2년 만에 20-20까지 찍었다. 2018시즌 이후 니혼햄 파이터즈로 이적[69] 한국과 마찬가지로 대만-일본 사이에도 공식적 규약 없이 임대 형식의 포스팅이 이루어진다.[70] 떡밥으로만 치면 현재 6개팀이 사이 좋게 리그에서 뛰고 있어야 한다. 팀 창단 관련 떡밥이 한국 인터넷에 많이 떠도는데 너무 진지하게 물지 말자.[71] 독립 추진은 동결했지만 독립 지향을 포기한 것은 아니다.[72]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스포츠란 것도 스토리성이 중요한 만큼 아는 선수가 나와야 관심을 가질 수 있는데 KBO리그도 하위 리그이긴 하지만 그래도 몇번 이름이라도 들어본 메이저리거들이 용병으로 오며, MLB 진출을 타진하거나 뛰다가 돌아온 선수들이 있고 BA 랭킹에 이름을 올리는 유망주들이 몇 있어서 헤비 야구팬이라면 이름을 아는 선수들이 팀당 몇 명 정도는 있다. 반면 대만리그는 이렇게 미국 야구팬이 '아는 선수'가 리그 전체를 통털어야 두어 명 나올 수준이기 때문.[73] 홈런왕 22홈런. 다만 선수들 타율은 다 높아서 완전한 투고타저라고 보긴 어렵다. 근데 2016-2017년의 타고투저가 워낙 미쳐서 이정도면 대만 기준으로는 투고타저가 맞는 듯.[74] 홈런왕 18홈런(가오궈후이), 10홈런 이상 기록자가 전체 7명. 홈런은 조금 늘었지만 규정타석 3할 타자는 7명으로 이 시즌은 확실히 투고타저였다. 다만 1점대 ERA 투수는 없었으니 극 투고는 아녔다.[75] 홈런왕 18홈런(린이취엔), 10홈런 이상 기록자가 전체 5명. 이정도 홈런 페이스면 NPB 통일구 수준이다. 매니 라미레즈가 시즌의 40% 정도만 뛴 시즌이 하필 이 시즌이라 홈런이 8개밖에 안 나온거지, 사실 이 페이스로 풀 시즌을 뛰었으면 매니가 단독 홈런왕이었다.(경기수 기준으로 계산하면 20홈런.)[76] 다만 이 시즌들도 홈런이 엄청 안 나온 케이스이지 선수들 타율은 상당히 높은 편이긴 했다. NPB 통일구 시절의 홈런 페이스를 보여주었던 2013년에도 3할 타자는 즐비했다.